좋은 시 느낌하나 5726

텃밭의 유월 /이원문

텃밭의 유월 이원문 봄이라 하던 때가 엊그제였었는데 그 봄이 언제 어디로 갔나 샛대문 밖 텃밭 그늘 아침 나절 비켜 서고 이것 저것 심은 채소 잘도 자라는구나 상추에 쑥갓 시금치 부추 고추 포기 밑 씨 뿌린 열무 엷드란히 하루가 다르고 옥수수에 참외 수박 심은 감자 켔으니 마늘은 안 뽑을까 자라는 오이 손마디에 뿌린 팝씨 실파 되니 이 손으로 모종 해야 되겠지 많지는 않아도 모종에 뿌린 씨앗들이니 누구 거둬 먹이려 이 부지런을 떨었나 없는 살림 그 살림에 그렇게 기른 아이들 덥다 하는 그 초 중복 날 이 에미 보러 오려나 할미 찾을 손주 놈들 보고 싶구나

푸른 유월 /목필균

푸른 유월 목필균 내게도 저런 시퍼런 젊음이 있었던가 풀빛에 물든 세상 떠들썩한 세상이 온통 초록빛이다 흥건하게 번져오는 녹음이 산을 넘다가 풍덩 강에 빠진다 푸르게 물든 강물 푸르게 물든 강물이 또르르 아카시아 향기 말아쥐고 끝없이 길을 연다 눈으로 코끝으로 혀끝으로푸른 혈맥이 뛰며 펄펄 살아 숨쉬는 6월 속으로 나도 따라 흐른다

유월의 낭만 /이원문

유월의 낭만 이원문 어느 꽃이 피고 질까 봄의 꽃 보릿고개 넘어 사랑 따라 가버리고 언덕배기의 여름꽃 풀숲에 숨어 있다 지는 꽃에 떠난 봄 봄은 언제나 그렇게 떠나야 했나 초여름 밤꽃 향기 내려 앉는다 이 밤꽃 지고 나면 뜨거운 여름 추녀 끝 제비 새끼 날개짓에 즐겁고 모내놓은 들녘 논 바닥 덮는다 이제 잃은 봄에 완연한 여름 유월의 초여름 며칠이나 될까 칡꽃 떨어지면 더 뜨겁고 마지막 뜸북새 찾아 오는 날 보내는 초여름 봉숭아꽃 기다린다

유월 기집애 /나태주

유월 기집애 나태주 너는 지금쯤 어느 골목 어느 낯선 지붕 밑에 서서 울고 있느냐 세상은 또다시 유월이 와서 감꽃이 피고 쥐똥나무 흰꽃이 일어 벌을 꼬이는데 감나무 새 잎새에 유월 비단햇빛이 흐르고 길섶의 양달개비 파란 혼불꽃은 무더기 무더기로 피어나는데 너는 지금쯤 어느 하늘 어느 강물을 혼자 건너가며 울고 있느냐 내가 조금만 더 잘해주었던들 너는 그리 쉬이 내곁을 떠나지 않았을 텐데 내가 가진 것을 조금만 더 나누어주었던들 너는 내 곁에서 더 오래 숨쉬고 있었을 텐데 온다간다 말도 없이 떠나간 아이야 울면서 울면서 쑥굴헝의 고개 고개를 넘어만 가고 있는 쪼꼬만 이 유월 기집애야 돌아오려무나 돌아오려무나 감꽃이 다 떨어지기 전에 쥐똥나무 흰꽃이 다 지기 전에 돌아오려무나 돌아와 양달개비 파란 혼불꽃 옆..

6월에는 스스로 잊도록 하자/안톤 슈나크

6월에는 스스로 잊도록 하자 안톤 슈나크 시냇가에 앉아보자 될 수 있으면 너도밤나무 숲 가까이 앉아 보도록 하자 한 쪽 귀로는 여행길 떠나는 시냇물 소리에 귀기울이고 다른 쪽 귀로는 나무 우듬지의 잎사귀 살랑거리는 소리를 들어보자 그리고는 모든 걸 잊도록 해보자 우리 인간의 어리석음 질투 탐욕 자만심 결국에는 우리 자신마저도 사랑과 죽음조차도 포도주의 첫 한 모금을 마시기 전에 사랑스런 여름 구름 시냇물 숲과 언덕을 돌아보며 우리들의 건강을 축복하며 건배하자

6월의 나무에게 /카프카

6월의 나무에게 카프카 나무여, 나는 안다 그대가 묵묵히 한곳에 머물러 있어도 쉬지 않고 먼 길을 걸어왔음을 고단한 계절을 건너 와서 산들거리는 바람에 이마의 땀을 씻고 이제 발등 아래서 쉴 수 있는 그대도 어엿한 그늘을 갖게 되었다 산도 제 모습을 갖추고 둥지 틀고 나뭇가지를 나는 새들이며 습윤한 골짜기에서 들려오는 맑고 깨끗한 물소리는 종일토록 등줄기를 타고 오르며 저녁이 와도 별빛 머물다가 이파리마다 이슬을 내려놓으니 한창으로 푸름을 지켜 낸 청명은 아침이 오면 햇살 기다려 깃을 펴고 마중 길에 든다 나무여, 푸른 6월의 나무여

유월의 노래 / 신석정

유월의 노래 신석정 감았다 다시 떠보는 맑은 눈망울로 저 짙푸른 유월 하늘을 바라보자 유월 하늘 아래 줄기 줄기 뻗어나간 청산 푸른 자락도 다시 한번 바라보자 청산 푸른 줄기 골 누벼 흘러가는 겨웁도록 잔조로운 물소릴 들어보자 물소리에 묻어오는 하늬바람이랑 하늬 바람에 실려오는 저 호반새 소리랑 들어보자 유월은 좋더라, 푸르러 좋더라 가슴을 열어주어 좋더라 물소리 새소리에 묻혀 살으리 이대로 유월을 한 백년 더 살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