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느낌하나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과거가 있단다.

종이연 2008. 3. 13. 10:50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과거가 있단다.


-조병화-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과거가 있단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과거가...
비가 오는 거리를 혼자 걸으면서
무언가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은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란다.

낙엽이 떨어져 뒹구는 거리에...
한 줄의 시를 띄우지 못하는 사람은
애인이 없는 사람이란다.
함박눈 내리는 밤에 혼자 앉아 있으면서도
꼭 닫힌 창문으로 눈이 가지지 않는 사람은
사랑의 덧을 모르는 가엾은 사람이란다.


살아있다는 것으로 비를 맞는다
바람조차 낯선 거리를 서성이며
앞 산 흰 이마에 젖는다

나의 사랑은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습.

이른 아침
희미한 안개에 둘러싸인
고층 건물들의 우울한 표정.

어둠 속에서 말없이 서 있는
가로등의
조용한 침묵의 눈빛.

아득한 벌판에서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의
무언(無言)의 손짓이다.


옛사람을 기다리는 동안은
창밖에 비가 와도 좋다.

밤은 넝마처럼
시름시름 앓다
흩어져가고

자욱한 안개
님의 입김으로
조용히 걷히우면
하늘엔 비가 와도 좋다.

세상은 참 아프고 가파르지만
갈매기도 노래하며
물을 나는데

옛 사람이 그리울 때만은
창밖에 주룩주룩 비가 와도 좋다.
속옷이 다 젖도록
비가 와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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