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의 파밭
안명옥
늦가을 파밭,
말라버린 젖꼭지
아직도 땅에 젖을 물리고 있는 파,
곧 무서리가 내릴 텐데,
파는 얇아진 피부 위에
바람을 껴입고 살아온 것일까
까칠해진 존재의 부피만큼
잔뿌리를 내리며
시들어가던 시간 속에서, 파는
짙은 체취를 품고 있었다
파는 이제 고요하다
푸른 핏줄 끊임 없이 흔들어대던
둥근 몸의 파동도
뿌리 근처에서 멎었다
가만히 파밭의 흙을 거두어내고
젖은 잔뿌리를 들추어보니 파는
제 몸이 흔들릴 때마다
많이 울었던 모양이다
매운 제 몸의 향기로
가슴속의 아픈 생각들을 밤새
하얀 실핏줄로 풀어내고 있던 파는
제 몸의 허공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 매운 향기를 갖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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