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 대하여 / 최문자 믿음에 대하여 / 최문자 그녀는 믿는 버릇이 있다. 피가 날 때까지 믿는다 금방 날아갈 휘발유 같은 말도 믿는다. 그녀는 낯을 가리지 않고 믿는다. 그녀는 못 믿을 남자도 믿는다. 한 남자가 잘라온 다발 꽃을 믿는다. 꽃다발로 묶인 헛소리를 믿는다. 밑동은 딴 데 두고 대궁으로 걸어오는 반토막짜리 .. 좋은 시 느낌하나 2008.01.07
참! / 김미혜 참! / 김미혜 "이거 진짜예요?" 엄마는 참기름 살 때 꼭 물어 보아요. 참깨, 참쑥, 참취, 참꽃, 참나무, 참나물, 참숯, 참빗, 참나리, 참비름, 참개암나무, 참새, 참게, 참매미, 참개구리, 참다람쥐, 참당나귀, 참치, 참붕어, 참조기, 참가자미, 참말, 참뜻, 참사랑, 참소리, 참값…… "참"이란 뜻.. 좋은 시 느낌하나 2008.01.07
새해 아침 / 양현근 새해 아침 / 양현근 눈부셔라 저 아침 새벽길을 내쳐 달려와 세세년년의 산과 들, 깊은 골짝을 돌고 돌아 넉넉한 강물로 일어서거니 푸른 가슴을 풀고 있거니 이슬, 꽃, 바람, 새 온통 그리운 것들 사이로 이 아침이 넘쳐나거니 남은 날들의 사랑으로 오래 눈부시거니 좋은 시 느낌하나 2008.01.03
발 1 / 손현숙 발 1 / 손현숙 1 엄마의 등에 업혀 곤히 잠든 아가의 맨발이 포대기 밖으로 쏙 빠져 나와 있다. 한번도 자신의 무게를 실어보지 못한 발. 아무 것도 경계할 줄 모르는 태초의 꽃. 아가의 말랑말랑한 발을 보며 언젠가는 저 발이 견디며 가야 하는 땅위의 돌들과 음모와 때로는 돌아서야 하는 사랑과 어느.. 좋은 시 느낌하나 2008.01.01
폭설 / 박이화 폭설 / 박이화 밤새 보태고 또 보태어 쓰고도 아직 못다한 말들은 폭설처럼 그칠 줄 모릅니다 우리, 그리움에 첩첩이 막혀 더 갈데 없는 곳까지 가볼까요? 슬픔에 푹푹 빠져 헤매다 함께 눈사태로 묻혀 버릴까요? 나 참 바보 같은 여자지요? 눈오는 먼 나라 그 닿을 수 없는 주소로 이 글을 쓰는 난 정말 .. 좋은 시 느낌하나 2007.12.30
밥 / 장석주 밥 / 장석주 귀 떨어진 개다리 소반 위에 밥 한 그릇 받아놓고 생각한다. 사람은 왜 밥을 먹는가. 살려고 먹는다면 왜 사는가. 한 그릇의 더운 밥을 먹기 위하여 나는 몇 번이나 죄를 짓고 몇 번이나 자신을 속였는가. 밥 한 그릇의 사슬에 매달려 있는 목숨 나는 굽히고 싶지 않은 머리를 조아리고 마음.. 좋은 시 느낌하나 2007.12.28
겨울, 사랑의 편지 / 김용택 겨울, 사랑의 편지 / 김용택 산 사이 작은 들과 작은 강과 마을이 겨울 달빛 속에 그만그만하게 가만히 있는 곳 사람들이 그렇게 거기 오래오래 논과 밭과 함께 가난하게 삽니다. 겨울 논길을 지나며 맑은 피로 가만히 숨 멈추고 얼어있는 시린 보릿잎에 얼굴을 대보면 따뜻한 피만이 얼 수 있고 따뜻한 .. 좋은 시 느낌하나 2007.12.26
이름을 지운다/허형만 이름을 지운다/허형만 수첩에서 이름을 지운다 접니다. 안부 한 번 제대로 전하지 못한 전화번호도 함께 지운다 멀면 먼대로 가까우면 가까운대로 살아생전 한 번 더 찾아뵙지 못한 죄송한 마음으로 이름을 지운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음을 몸이 먼저 아는지 안경을 끼고도 침침해 .. 좋은 시 느낌하나 2007.12.24
동정 (冬庭) / 박목월 동정 (冬庭) / 박목월 뜰을 쓰는 대로 가랑잎이 비오듯 했다. 마른 국화 향기는 차라리 섭섭한 것. 이, 쓸쓸한 뜰에 구름은 한가롭지 않다. 저, 어지러운 구름 그림자. 반생을 덧없이 보내고 나머지 한나절을 바람이 설렌다. 산에는 찬 그늘이 내리고 새들도 멀리 가고 말았다. 좋은 시 느낌하나 2007.12.24
떠도는 자의 노래/신경림 떠도는 자의 노래/신경림 외진 별정우체국에서 무엇인가를 놓고 온 것 같다 어느 삭막한 간이역에서 누군가를 버리고 온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문득 일어나 기차를 타고 가서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 좁은 골목을 서성이고 쓰레기들이 지저분하게 널린 저잣거리도 기웃댄다. 놓고 온 것을 찾겠다고 아니, .. 좋은 시 느낌하나 2007.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