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사랑의 편지 / 김용택 겨울, 사랑의 편지 / 김용택 산 사이 작은 들과 작은 강과 마을이 겨울 달빛 속에 그만그만하게 가만히 있는 곳 사람들이 그렇게 거기 오래오래 논과 밭과 함께 가난하게 삽니다. 겨울 논길을 지나며 맑은 피로 가만히 숨 멈추고 얼어있는 시린 보릿잎에 얼굴을 대보면 따뜻한 피만이 얼 수 있고 따뜻한 .. 좋은 시 느낌하나 2007.12.26
이름을 지운다/허형만 이름을 지운다/허형만 수첩에서 이름을 지운다 접니다. 안부 한 번 제대로 전하지 못한 전화번호도 함께 지운다 멀면 먼대로 가까우면 가까운대로 살아생전 한 번 더 찾아뵙지 못한 죄송한 마음으로 이름을 지운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음을 몸이 먼저 아는지 안경을 끼고도 침침해 .. 좋은 시 느낌하나 2007.12.24
동정 (冬庭) / 박목월 동정 (冬庭) / 박목월 뜰을 쓰는 대로 가랑잎이 비오듯 했다. 마른 국화 향기는 차라리 섭섭한 것. 이, 쓸쓸한 뜰에 구름은 한가롭지 않다. 저, 어지러운 구름 그림자. 반생을 덧없이 보내고 나머지 한나절을 바람이 설렌다. 산에는 찬 그늘이 내리고 새들도 멀리 가고 말았다. 좋은 시 느낌하나 2007.12.24
떠도는 자의 노래/신경림 떠도는 자의 노래/신경림 외진 별정우체국에서 무엇인가를 놓고 온 것 같다 어느 삭막한 간이역에서 누군가를 버리고 온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문득 일어나 기차를 타고 가서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 좁은 골목을 서성이고 쓰레기들이 지저분하게 널린 저잣거리도 기웃댄다. 놓고 온 것을 찾겠다고 아니, .. 좋은 시 느낌하나 2007.12.24
나룻배와 행인/한용운 나룻배와 행인/한용운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 좋은 시 느낌하나 2007.12.24
졸부가 되어/임희구 졸부가 되어/임희구 시가 잘 써지지 않아 오랫동안 움츠려 지내다가 지난 여름 가을 난데없이 스무 편의 시를 썼다 시 한 편 없던 내게 스무 편은 가당찮게 많은 것이어서 마음이 안정이 안 되고 자꾸만 들뜬다 느닷없이 새로 쓴 시를 스무 편이나 갖게 된 나를 봐라, 그 무엇도 두렵지 않다 나는 마치 .. 좋은 시 느낌하나 2007.12.20
희망 / 나 태 주 희망 / 나 태 주 날이 개이면 시장에 가리라 새로 산 자전거를 타고 힘들여 페달을 비비며 될수록 소로길을 찾아서 개울길을 따라서 흐드러진 코스모스 꽃들 새로 피어나는 과꽃을 보면서 가야지 아는 사람을 만나면 자전거에서 내려 악수를 청하며 인사를 해야지 기분이 좋아지면 휘파람이라도 불어.. 좋은 시 느낌하나 2007.12.20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 좋은 시 느낌하나 2007.12.18
모과 1 / 박승미 모과 1 / 박승미 허리끈을 풀어 놓고 누은 여자 경사가 급하지 않아서 잠시 쉬어가고 싶은 이 봐 하고 툭 치면 응 나? 하고 돌아 눕는 살진 여자의 누드. 좋은 시 느낌하나 2007.12.16
비닐 봉지의 추억 / 강은교 비닐 봉지의 추억 / 강은교 어느 가을날 오후, 비닐봉지 하나가 길에 떨어져 있다가 나에게로 굴러왔다 그 녀석은 헐떡헐떡거리면서 나에게 자기의 몸매를 보여주었다. 그 녀석이 한바퀴 빙 돌았다. 마치 아름다운 패션모델처럼 그러자 그 녀석의 몸에선 바람이 일었다 얄궂은 바람, 나를 한대 세게 쳤.. 좋은 시 느낌하나 2007.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