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느낌하나

나의 하느님 /김춘수

종이연 2008. 2. 26. 13:35
나의 하느님 /김춘수


사랑하는 나의 하느님, 당신은
늙은 비애(悲哀)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詩人) 릴케가 만난
슬라브 여자(女子)의 마음 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다.
손바닥에 못을 박아 죽일 수도 없고 죽지도 않는
사랑하는 나의 하느님, 당신은 또
대낮에도 옷을 벗는 어리디어린
순결(純潔)이다.
삼월(三月)에
젊은 느릅나무 잎새에서 이는
연두빛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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