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느낌하나

풀잎에 기대어

종이연 2008. 3. 13. 09:45
    풀잎에 기대어 풀잎에 기대어 풀잎이 되어 온몸에 이슬을 묻히고 저녁을 지내고 싶다. 조용히 별 아래 이름없는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고 살고 싶다. 그것은 울음이 아니다. 소리 없이 울다가 그 끝에 이른 것이 아니다. 누구의 울음의 보석이 밤에 풀잎 위에 뜨거운 피구슬로 쏟아져 피어 내가 울고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詩 이성선
    풀잎의 노래 병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은 하늘을 걸어가는 사람이다. 지상에 아픔으로 남아 있는 사람은 하늘에 꽃을 바치는 사람이다. 그대 안에 돌아와 계시니 신의 음성이 계시니 깨어 노래하는 자와 함께 있다. 그대를 버리지 못하여 누군가 떨리는 손으로 이마에 등을 켜주니 천 길 낭떠러지에 떨어져 높고 찬란히 사는 별을 본다. 하늘에 몸 바치고 살아가는 자여 사랑을 바치는 자여 그대 곁에 내가 있어 깊은 밤 풀잎 되어 운다. 詩 이성선
    풀잎으로 나무로 서서 내가 풀잎으로 서서 별을 쳐다본다면 밤하늘 별들은 어떻게 빛날까. 내가 나무로 서서 구름을 본다면 구름은 또 어떻게 빛날까. 내가 다시 풀잎으로 세상을 본다면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내 다시 나무로 서서 나를 본다면 나는 진정 어떤 모습으로 세상으로 걸어갈까. 내가 별을 쳐다보듯 그렇게 어디선가 풀잎들도 별을 쳐다보고 있다. 내가 나무를 바라보듯 그렇게 어디선가 나무도 나를 보고 있다. 詩 이성선
    산책 안개 속을 들꽃이 산책하고 있다 산과 들꽃이 산책하는 길을 나도 함께 간다 안개 속 길은 하늘의 길이다 하얀 무명천으로 몸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안에 나도 들어가 걸어간다 그 속으로 산이 가고 꽃이 가고 나무가 가고 다람쥐가 가고 한 마리 나비가 하늘 안과 하늘 밖을 날아다니는 길 발 아래는 산, 붓꽃 봉우리들 안개 위로 올라와서 글씨 쓴다 북과 피리의 이 가슴길에 골짜기 고요가 내 발을 받들어 허공에 놓는다 써 놓은 글씨처럼 엎질러진 붉은 잉크처럼 아침 구름이 널려 있다 이 붓꽃에서 저 붓꽃으로 발을 옮길 때 안개 열었다 닫았다 하는 세상이 내 눈 안에 음악으로 산다 안개 속을 풀꽃 산 더불어 산책을 한다 詩 이성선 - 시안 2000 가을호
    흐르는 곡은 쇼팽 / 빗방울 전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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