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느낌하나

까 닭 /정 호승

종이연 2008. 3. 12. 16:45
까 닭


정 호승





내가 아직 한 포기 풀잎으로 태어나서

풀잎으로 사는 것은

아침마다 이슬을 맞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짓가랑이를 적시며 나를 짓밟고 가는

너의 발자국을 견디기 위해서다


내가 아직 한 송이 눈송이로 태어나서

밤새껏 함박눈으로 내리는 것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싸릿빗자루로 눈길을 쓰시는

어머니를 위해서가 아니라

눈물도 없이 나를 짓밟고 가는

너의 발자국을 고이 남기기 위해서다


내가 아직도 쓸쓸히 노래 한 소절로 태어나서

밤마다 아리랑을 부르며 별을 바라보는 것은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를 사랑하기엔 내 인생이

너무나 짧기 때문이다

'좋은 시 느낌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저녁 안부  (0) 2008.03.13
풀잎에 기대어  (0) 2008.03.13
바닥에서도 아름답게 /곽재구  (0) 2008.03.12
시인 예수/정호승  (0) 2008.03.12
새벽 /도종환  (0) 2008.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