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느낌하나 5686

시월 /이문재

시월  이문재투명해지려면 노랗게 타올라야 한다은행나무들이 일렬로 늘어서서은행잎을 떨어뜨린다중력이 툭, 툭, 은행잎들을 따간다노오랗게 물든 채 멈춘 바람이가볍고 느린 추락에게 길을 내준다아직도 푸른 것들은 그 속이 시린 시월내 몸 안에서 무성했던 상처도 저렇게노랗게 말랐으리, 뿌리의 반대켠으로타올라, 타오름의 정점에서중력에 졌으리라, 서슴없이 가벼워졌으나결코 가볍지 않은 시월노란 은행잎들이 색과 빛을 벗어던진다자욱하다, 보이지 않는 중력

10월 /오세영

10월  오세영무언가 잃어간다는 것은하나씩 성숙해 간다는 것이다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때,돌아보면 문득나 홀로 남아 있다그리움에 목마르던 봄날 저녁분분히 지던 꽃잎은 얼마나 슬펐던가욕정으로 타오르던 여름 한낮화상 입은 잎새들은 또 얼마나 아팠던가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때,이 지상에는외로운 목숨 하나 걸려 있을 뿐이다낙과落果여네 마지막의 투신을 슬퍼하지 말라마지막의 이별이란 이미 이별이 아닌 것빛과 향이 어울린 또 한번의 만남인 것을우리는하나의 아름다운 이별을 갖기 위해서오늘도잃어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시월 이야기 / 이향지

시월 이야기   이향지만삭의 달이소나무 가지에서 내려와벽돌집 모퉁이를 돌아갑니다조금만 더 뒤로 젖혀지면계수나무를 낳을 것 같습니다계수나무는 이 가난한 달을엄마 삼기로 하였습니다무거운 배를 소나무 가지에 내려놓고모로 누운 달에게"엄마"라고 불러봅니다달의 머리가 발뒤꿈치까지 젖혀지는 순간이 왔습니다아가야아가야 부르는 소리골목을 거슬러 오릅니다벽돌집 모퉁이가 대낮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