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느낌하나 5698

여름이 떠나가네 /김인숙

여름이 떠나가네 김인숙 여름이 떠나려 하니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밤새도록귀뚜리의 노래는울어도 다 못할 애끓는 노래떠나는 사랑 잡을 수 없는안타까운 그리움 차라리미련도 후회도 떨치고 싶은꿈꾸는 가을의 노래 귀뚜루루 귀뚜루루 귀뚜루루어서 가까이 더 오시오나 그대와 더불어 이 한 날을슬퍼도 즐거이노래 부르고 싶소

성숙해진 늦여름 /김재덕

성숙해진 늦여름       김재덕 삶이 질퍽거린다고 울상이던 낯짝이 누렇게 떠서인지 고개를 못 드는 벼 이삭은 겨우 울보 매미를 배웅했건만 가을의 노래밖에 할 줄 모른다는 귀뚜라미 마중하려니 코로나에 지친 허수아비가 눈에 밟힌다 곧 참새가 떼 지을 것을 안 농부의 고래고래도 귀청 따가울 건데 가뜩이나 힘겨운 허수아비의 누더기까지 찢어지겠다만 어수선한 세상이라도 할 일들 해야겠지.. 어라, 마른하늘 날벼락 친다. 산모롱이에선 아들딸 낳는 밤송이 산통에 고슴도치 될 청개구리 어쩌라고 호랑이 장가가는 걸까 휘둥그레 비구름 뚫은 해님이 을씨년스러운 오늘따라 옛사랑 만나듯 반가워도 짓궂을 햇살 때문에 육수를 꽤 흘리겠다 그나저나, 늦여름이 농익는데도 아직 시뻘겋게 달아오르지 않은 고추잠자리 보이지 않는다.

여름일기 2 /이해인

여름일기 2 /이해인 ​​오늘 아침내 마음의 밭에는밤새 봉오리로 맺혀있던한 마디의 시어가노란 쑥갓꽃으로 피어 있습니다.​비와 햇볕이 동시에 고마워서자주 하늘을 보는 여름잘 익은 수박을 쪼개어이웃과 나누어 먹는 초록의 기쁨이여​우리가 사는 지구 위에도수박처럼 둥글고 시원한자유와 평화 가득한 여름이면 좋겠습니다.오는 아침 나는 다림질한 흰 옷에물을 뿌리며 생각합니다.​우울과 나태로 풀기없던 나의 일상을희망으로 풀먹여 다림질해야겠음을지금쯤 바쁜 일터로 향하는나의 이웃을 위해한 송이의 기도를 꽃피워야겠음을...​

여름일기 1/이해인

여름일기 1 이해인 ​​ 여름엔햇볕에 춤추는 하얀 빨래처럼깨끗한 기쁨을 맛보고 싶다.영혼의 속까지 태울 듯한 태양아래나를 빨아 널고 싶다.​여름엔 잘 익은 포도송이처럼향기로운 땀을 흘리고 싶다.방울마저도 노래가 될 수 있도록뜨겁게 살고 싶다.​여름엔꼭 한번 바다에 가고 싶다.바다에 가서오랜 세월 파도에 시달려온섬 이야기를 듣고 싶다.침묵으로 엎드려 기도하는 그에게서​살아가는 법을 배워오고 싶다.​​

여름 아침 / 김수영

여름 아침  김수영 여름아침의 시골은 가족과 같다햇살을 모자같이 이고 앉은 사람들이 밭을 고르고우리집에도 어저께는 무씨를 뿌렸다원활하게 굽은 산등성이를 바라보며나는 지금 간밤의 쓰디쓴 후각과 청각과 미각과 통각마저 잊어버리려고 한다 물을 뜨러 나온 아내의 얼굴은어느틈에 저렇게 검어졌는지 모르나차차 시골동리사람들의 얼굴을 닮아간다뜨거워질 햇살이 산 위를 걸어내려온다가장 아름다운 이기적인 시간 우에서나는 나의 검게 타야 할 정신을 생각하며구별을 용사하지 않는밭고랑 사이를 무겁게 걸어간다 고뇌여 강물은 잠잠하게 흘러내려가는데천국도 지옥도 너무나 가까운 곳 사람들이여차라리 숙련이 없는 영혼이 되어씨를 뿌리고 밭을 갈고 가래질을 하고 고물개질을 하자 여름아침에는자비로운 하늘이 무수한 우리들의 사진을 찍으리라단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