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느낌하나 5686

흑백사진 /정일근

흑백사진 정일근 내 유년의 7월에는 냇가 잘 자란 미루나무 한 그루 솟아오르고또 그 위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 내려와어린 눈동자 속 터져나갈 듯 가득 차고찬물들은 반짝이는 햇살 수면에 담아 쉼없이 흘러갔다.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착한 노래들도 물고기들과 함께 큰 강으로 헤엄쳐 가버리면과수원을 지나온 달콤한 바람은미루나무 손들을 흔들어 차르르차르르내 겨드랑에도 간지러운 새잎이 돋고물아래까지 헤엄쳐가 누워 바라보는 하늘 위로삐뚤삐뚤 헤엄쳐 달아나던 미루나무 한 그루.달아나지 마 달아나지 마 미루나무야,귀에 들어간 물을 뽑으려 햇살에 데워진 둥근 돌을 골라 귀를 가져다대면허기보다 먼저 온몸으로 퍼져오던 따뜻한 오수,점점 무거워져오는 눈꺼풀 위로멀리 누나가 다니는 분교의 풍금소리 쌓이고미루나무 그늘 아래에서..

텃밭의 유월 /이원문

텃밭의 유월 이원문봄이라 하던 때가엊그제였었는데그 봄이 언제 어디로 갔나샛대문 밖 텃밭 그늘아침 나절 비켜 서고이것 저것 심은 채소잘도 자라는구나 상추에 쑥갓 시금치 부추고추 포기 밑 씨 뿌린 열무엷드란히 하루가 다르고옥수수에 참외 수박심은 감자 켔으니마늘은 안 뽑을까자라는 오이 손마디에 뿌린 팝씨 실파 되니이 손으로 모종 해야 되겠지많지는 않아도 모종에 뿌린 씨앗들이니누구 거둬 먹이려 이 부지런을 떨었나없는 살림 그 살림에 그렇게 기른 아이들덥다 하는 그 초 중복 날 이 에미 보러 오려나할미 찾을 손주 놈들 보고 싶구나

잘 가 6월 /김경철

잘 가 6월 김경철 갈수록 더워지는6월더위에 강한 수국이여러 가지 색깔을 선보이고 어느새 나타난짧은 옷짧은 바지강렬해진 햇볕에흐른 땀방울로살갗은 새까맣게 탄다 목마름에 잡은물병 하나숨조차 쉬지 않고목구멍을 타고 넘어가갈증을잠시나마 해소하지만 더위에 지친 사람들퇴근길을 그리며머릿속으로 시원함을 생각하고어둠이 내리자마자손에 꼭 잡은 맥주 한 잔시원하게 벌컥벌컥 마신다 저물어가는 6월의 어느 날원 안에 있는 세 친구쉼을 모르는지계속해서 흘러만 가고소리 없이 함께해준 시간고마웠고, 수고했다 잘 가 6월잘 가 오늘 하루

푸른 유월 /목필균

푸른 유월 목필균 내게도저런 시퍼런 젊음이 있었던가풀빛에 물든 세상떠들썩한 세상이 온통 초록빛이다흥건하게 번져오는 녹음이산을 넘다가 풍덩 강에 빠진다푸르게 물든 강물푸르게 물든 강물이또르르 아카시아 향기 말아쥐고끝없이 길을 연다눈으로 코끝으로혀끝으로푸른 혈맥이 뛰며펄펄 살아 숨쉬는 6월 속으로나도 따라 흐른다

유월의 독서/박 준

유월의 독서   박 준  그림자가 먼저 달려드는 산자락 아래 집에는 대낮에도 불을 끄지 못하는여자가 살고 그 여자의 눈 밑에 난 작고 새카만 점에서 나도 한 일 년은살았다 여럿이 같이 앉아 울 수도 있을 너른 마당이 있던 집, 나는 그곳에서유월이 오도록 꽃잎같은 책장만 넘겼다 침략과 주름과 유목과 노을의 페이지마다 침을 묻혔다 저녁이 되면 그 집의 불빛은  여자의 눈 밑 점처럼 돋아나고 새로 자란 명아주 잎들 위로 웃비가 내리다 가기도 했다 먼 능선 위를나는 새들도 제 눈 속에 가득 찬 물기들을 그 빛을 보며 말려갔겠다 책장을덮어도 눈이 자꾸 부셨던 유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