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시 - 연화리 시편26 /곽재구 가을의 시 - 연화리 시편26 곽재구 오후 내내 나룻배를 타고 강기슭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당신이 너무 좋아하는 칡꽃 송이들이 푸른 강기슭을 따라 한없이 피어 있었습니다 하늘이 젖은 꿈처럼 수면 위에 잠기고 수면 위에 내려온 칡꽃들이 수심 한가운데서 부끄러운 옷을 벗었습니다 바람이 불고 바람이 불어가고 지천으로 흩날리는 꽃향기 속에서 내 작은 나룻배는 그만 길을 잃고 맙니다 열림원. 1999년 좋은 시 느낌하나 2022.10.27
가을의 끝 /릴케 가을의 끝 릴케 언제부턴가 나는 모든 것이 변하여 가는 것을 보아 온다 일어서서 행동하고, 죽이고, 서럽게 하는 것들을 흐르는 시간의 사이사이에 정원들은 어드덧 모습이 달라진다 노랗게 물든던 정원의 누렇게 되어 비린 서서한 황페 길은 정말 멀기도 하였다 지금 텅 빈 정원에서 가로수길 너머로 바라다보면 엄숙히 드리운 닫힌 하늘을 아득히 먼 바다 끝까지 거의 볼 수가 있다 좋은 시 느낌하나 2022.10.26
가을은 아름답다 /주요한 가을은 아름답다 주요한 빗소리 그쳤다 잇는 가을은 아름답다 빛 맑은 국화송이에 맺힌 이슬 빛나고 꿩 우는 소리에 해 저무는 가을은 아름답다 곡식 익어 거두기에 바쁘고 은하수에 흰 돛대 한가할 때 절 아래 높은 나무에 까마귀 소리치고 피묻은 단풍잎 바람에 날리는 가을은 아름답다 물없는 물레방아 돌지 않고 무너진 섬돌 틈에서 달 그리운 귀뚜라미 우지짖는 멀리 있는 님생각 간절한 한 많은 철이여! 아름다운 가을이여! 좋은 시 느낌하나 2022.10.25
가을은 눈(眼)의 계절/김현승 가을은 눈(眼)의 계절 김현승 이맘때가 되면 당신의 눈은 나의 마음 아니, 생각하는 나의 마음보다 더 깊은 당신의 눈입니다 이맘때가 되면 낙엽들은 떨어져 뿌리에 돌아가고 당신의 눈은 세상에로 순수한 언어로 변합니다 이맘때가 되면 내가 당신에게 드리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가을 하늘 만큼이나 멀리멀리 당신을 떠나는 것입니다 떠나서 생각하고 그눈을 나의 영혼 안에 간직하여 두는 것입니다 낙엽들이 지는 날 가장 슬픈 것은 우리들 심령에는 가장 아름다운 것 .... 좋은 시 느낌하나 2022.10.24
가을의 소원 /이시영 가을의 소원 이시영 내 나이 마흔 일곱 나 앞으로 무슨 큰 일을 할 것 같지도 않고 (진즉 그것을 알았어야지!) 틈나면 (실업자라면 더욱 좋고) 남원에서 곡성 거쳐 구례 가는 섬진강 길을 머리 위의 굵은 밀잠자리떼 동무 삼아 터덜터덜 걷다가 거기 압록 지나 강변횟집에 들러 아직도 곰의 손발을 지닌 곰금주의 두툼한 어깨를 툭 치며 맑디 맑은 공기 속에서 소처럼 한번 씨익 웃어보는 일! 좋은 시 느낌하나 2022.10.22
가을의 소원 /안도현 가을의 소원 안도현 적막의 포로가 되는 것 궁금한 게 없이 게을러지는 것 아무 이유없이 걷는 것 햇볕이 슬어놓은 나락 냄새 맡는것 마른풀처럼 더이상 뻗지 않는 것 가끔 소낙비 흠씬 맞는 것 혼자 우는 것 울다가 잠자리처럼 임종하는 것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좋은 시 느낌하나 2022.10.21
가을의 기도 /김현승 가을의 기도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 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 같이 좋은 시 느낌하나 2022.10.20
백조를 보라/Alun Lewis 백조를 보라/Alun Lewis 백조를 보라 자신의 영상을 타고 가는 거기 만족스럽게 정박해있는 장식 연못 위의 수련 한 송이 고요한 10월의 여왕 그는 생각에 잠긴다 갈대와 물의 저 깨어지지 않는 환상 속에서 이제 그는 두들긴 연못에서 푸드득 소란스레 날개를 걷고 헝 소리 내며 의지에 찬 비행으로 머리 위를 지나간다 그의 날개들은 진동하는 공기를 탄다 날개들의 펄럭임은 느려지고 목은 수평선을 향해 겨냥되어 있다 보라 - 그것은 예언이다 좋은 시 느낌하나 2022.10.19
시월의 다짐/정연복 시월의 다짐 정연복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코스모스 꽃길을 걸어가리 산들바람에 춤추는 코스모스 따라 나의 몸도 나의 마음도 가벼이 춤추리. 한세상 거닐다 가는 인생은 참 아름다운 것 사랑으로 물들어 가는 인생은 더욱더 아름답고 행복한 것 코스모스의 명랑함으로 즐거이 사랑하며 살아가리. 좋은 시 느낌하나 2022.10.17
누가 쏘았을까, 10월 심장을/원영래 누가 쏘았을까, 10월 심장을 원영래 누가 10월 심장을 쏘았기에 첩첩 산마다 선혈 낭자할까 골골 들녘마다 억새강이 흐를까. 내 안 뜨겁게 달구던 피도 흘러나가 가슴 저며 시려 오는 걸까. 좋은 시 느낌하나 2022.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