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 닭 /정 호승 까 닭 정 호승 내가 아직 한 포기 풀잎으로 태어나서 풀잎으로 사는 것은 아침마다 이슬을 맞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짓가랑이를 적시며 나를 짓밟고 가는 너의 발자국을 견디기 위해서다 내가 아직 한 송이 눈송이로 태어나서 밤새껏 함박눈으로 내리는 것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싸릿빗자루로 눈길.. 좋은 시 느낌하나 2008.03.12
바닥에서도 아름답게 /곽재구 바닥에서도 아름답게 /곽재구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날은 올 수 있을까 미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은 채 그리워진 서로의 마음 위에 물먹은 풀꽃 한 송이 방싯 꽂아줄 수 있을까 칡꽃이 지는 섬진강 어디거나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한강변 어디거나 흩어져 사는 사람들의 모래알이 아름다워 뜨거워진 .. 좋은 시 느낌하나 2008.03.12
시인 예수/정호승 시인 예수 정호승 그는 모든 사람을 시인이게 하는 시인. 사랑하는 자의 노래를 부르는 새벽의 사람. 해 뜨는 곳에서 가장 어두운 고요한 기다림의 아들. 절벽 위에 길을 내어 길을 걸으면 그는 언제나 길 위의 길. 절벽의 길 끝까지 불어오는 사람의 바람. 들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용서하는 들녘.. 좋은 시 느낌하나 2008.03.12
새벽 /도종환 새벽 도종환 새벽 하늘에 돌아가지 못한 별 하나 떠 있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이 가장 고요해지는 때를 기다려 우리들 가장 가까운 곳까지 내려온 별인지도 모르지요. 오순도순 사랑하고 가슴 아파도 하는 얘기에 귀 기울이다 모두들 소리도 발자국도 없이 돌아갈 때에 너무도 가까이 내려와 오래오래 .. 좋은 시 느낌하나 2008.03.12
술 한잔/정호승 술 한잔 정호승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나는 몇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해 단 한번도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날에도 돌연꽃 소리없이 피었다 지는 날에도 ―정호승 시집 《눈물이 나면 .. 좋은 시 느낌하나 2008.03.12
나무의 수사학 / 손택수 나무의 수사학 / 손택수 꽃이 피었다, 도시가 나무에게 반어법을 가르친 것이다 이 도시의 이주민이 된 뒤부터 속마음을 곧이 곧대로 드러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나도 곧 깨닫게 되었지만 살아있자, 악착같이 들뜬 뿌리라도 내리자 속마음을 감추는 대신 비트는 법을 익히게 된 서른 몇 이후.. 좋은 시 느낌하나 2008.03.12
구름밭에서/박목월 구름밭에서 박목월 비둘기 울듯이 살까보아 해종일 구름밭에 우는 비둘기 다래 머루 넌출은 바위마다 휘감기고 풀섶 둥지에 산새는 알을 까네 비둘기 울듯이 살까보아 해종일 산 넘어서 우는 비둘기 <산도화(山桃花), 영웅출판사, 1955> 좋은 시 느낌하나 2008.03.12
감람나무/박목월 감람나무 시편 128편 ---박목월 어린 감람나무여. 주께서 몸소 거닐으신 갈릴리 축복받은 땅에 주의 발자국이 살아 있는 바닷가으로 안수를 받으려고 고개를 숙인 나무여 세상에는 감람나무보다 더 많은 어린이들이 자라고 있지만 그들의 뒤통수에 머물어 있는 주의 크고 따뜻한 손. 세상의 모든 수목은.. 좋은 시 느낌하나 2008.03.12
아직도 사랑한다는 말에/서정윤 아직도 사랑한다는 말에 - 서정윤 사랑한다는 말로도 다 전할 수 없는 내 마음을 이렇게 노을에다 그립니다 사랑의 고통이 아무리 클지라도 결국 사랑할 수 밖에,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우리 삶이기에 내 몸과 마음을 태워 이 저녁 밝혀드립니다 다시 하나가 되는 게 그다지 두려울지라도 .. 좋은 시 느낌하나 2008.03.12
푸른 하늘이 유죄 푸른 하늘이 유죄 마음에 따라 느낌에 따라 빛깔에 따라 세상은 달리 존재하는 가 봅니다 푸르면 푸른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하늘은 저 하기 나름 나와는 상관없어 보였죠 무심결에 치켜 본 하늘이 유난히 푸르다 싶었는데 빛깔이 주는 서러움 때문에 하루 종일 앓아누웠습니다 거침없는 쪽빛 속에서.. 좋은 시 느낌하나 2008.03.11